벚꽃이 피는 4월이 되면, 충청남도 당진 장고항에는 특별한 활기가 돌기 시작합니다. 가게마다 커다란 양푼이 등장하고, 그 안을 가득 채운 투명하고 가느다란 무언가가 파르르 움직입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이게 뭐지?' 싶을 만큼 낯선 모습입니다. 바로 실치입니다.
실처럼 가늘고 반투명한 이 작은 생선은 3월 말부터 5월 초, 고작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만 살아있는 채로 맛볼 수 있습니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금세 죽어버리는 탓에 대부분은 말려서 유통되고, 생으로 먹는 '실치회'는 오직 산지에서, 그것도 제철에만 가능한 방식입니다. 그렇기에 이 시기 장고항 일대는 실치를 맛보러 온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실치는 흰베도라치, 점베도라치 등 베도라치류의 치어입니다. 베도라치는 서북 태평양에 분포하는 어종으로, 한국에서는 서해와 남해, 동중국해, 발해만에서 발견되며 동해에서는 잡히지 않습니다. 성어의 크기는 보통 8~10cm이며 최대 20cm까지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혹시 뱅어포를 드셔본 적 있으신가요? 뱅어가 잘 잡히지 않는 요즘, 뱅어 대신 베도라치의 치어를 건조해 만든 것이 바로 뱅어포입니다. 다만 성어는 살이 너무 납작하고 등 가시가 강해 식용으로는 사용되지 않으며, 치어일 때만 건조해 포로 만들거나 생으로 먹을 수 있습니다.
봄철 서해안에서 주로 잡히는 1년생 어류인 실치는, 뼈가 아직 단단해지기 전 어린 상태에서 회로 즐길 수 있는 습니다.
이 짧은 시기가 지나면 더 이상 생으로 먹을 수 없기에, 3월 말부터 5월 초 단 한 달 남짓한 기간이 실치회를 맛볼 수 있는 전부입니다.
실치는 갓잡아 올려 싱싱한 상태 일 수록 투명함을 자랑합니다.
실치라는 이름은 그 생김새에서 비롯됐습니다. 치어의 몸체는 거의 투명하고, 손가락 위에 올려놓으면 피부 아래 혈관이 비칠 정도로 여립니다. 뼈는 아직 물렁물렁할 정도로 연해 씹을 필요가 없고, 일반적인 회처럼 쫄깃한 식감을 기대했다면 조금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입 넣는 순간, 이 생선이 왜 봄마다 사람들을 당진으로 불러모으는지 이해하게 됩니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리는 듯한 부드러움, 비린 맛은 거의 없고 은은한 바다 향과 함께 미세한 쌉쌀함이 감돌며 자꾸만 손이 가게 됩니다. 특히나 새콤한 야채 무침과 함께 먹는 실치회는 입맛을 돋궈 식욕을 살리는 매력이 있습니다.
미식가들이 '봄의 맛'이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는 음식입니다.
실치회는 맛만 좋은게 아니라 영양학적으로도 주목할 만합니다. 실치는 칼슘, 인, 비타민 등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어 봄철 보양식으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뼈째 먹는 생선인 만큼 칼슘 섭취에도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이지메뉴팀은 지난 주말, 당진 수산물 유통센터를 직접 찾았습니다.
주말이라 판매하시는 분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메뉴판에는 음식 이름과 가격만 간략히 적혀 있었습니다.
각 테이블마다 실치회가 수북이 쌓인 접시가 놓였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음식을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지메뉴팀이 식사하던 중간에 앉은 옆자리 손님들은 실치회와 야채무침을 받아 들고, 그냥 그 상태로 드시고 계셨습니다.
원래 식당 주인분들이 김을 챙겨 주셔야 하는데 그분들은 너무 바빴고, 옆자리 가족들은 아이를 돌보며 먹느라 다른 테이블이 어떻게 먹는지 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앞에 놓인 것을 먹으면서도 어딘가 의아한 표정이었습니다.
저희는 뒤늦게 그 모습을 보고 "실치회 김에 싸서 드시는 거예요!" 하며 김을 건네드렸습니다. 그제야 "아, 이렇게 먹는 거였구나!" 하시며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만약 그분들이 김이나 깻잎에 싸서 먹는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상인분께 "김이나 깻잎 있나요?" 하고 여쭤볼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먹는 방법 자체를 모르면, 무엇을 물어봐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한국인도 처음이라면 충분히 헷갈릴 수 있습니다. 보통 '회'라고 하면 간장과 와사비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실치회는 조금 다릅니다. 새콤하게 버무린 야채와 깻잎 혹은 김에 싸서 고소함을 즐기는 등, 먹는 방법 자체가 이 음식의 일부인데 그 정보가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전달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외국인 관광객이라면 어떨까요? 그날 현장에는 외국어 메뉴판도, 음식에 대한 설명도, 먹는 방법을 안내하는 문구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실치가 어떤 생선인지, 이 투명한 음식이 입에 들어가면 어떤 맛인지, 그리고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이 모든 것이 그저 '아는 사람만 아는 정보'로 남아 있었습니다.
실치회는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맛이 크게 달라지는 음식입니다. 처음 드시는 분이라면, 주문한 순간부터 눈여겨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참기름과 깨 — 실치회 고소함의 비밀
실치회가 테이블에 올라오면, 실치회가 담긴 접시 위로 참기름이 한 바퀴 둘러지고 통깨가 솔솔 뿌려집니다. 이것이 실치회를 더욱 고소하게 만드는 핵심입니다. 참기름의 깊은 향이 실치의 은은한 바다 향과 어우러지면, 회 특유의 비릿함은 사라지고 고소함만 남습니다. 첫 입을 먹기 전, 이 조합을 먼저 눈으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이 음식에 대한 기대감이 달라집니다.
김이냐, 깻잎이냐 — 취향에 따라 고르세요
실치회를 싸 먹는 방식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김에 싸 먹는 방법과 깻잎에 싸 먹는 방법입니다. 간이 되지 않은 김을 선택하면 고소하고 담백한 풍미가 실치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깻잎을 선택하면 특유의 향긋함이 더해져 또 다른 맛의 층위가 생깁니다. 물론 내가 방문한 식당에 따라서 둘 중 하나만 제공 하기도 하는 경우가 많으며, 어느 쪽이 정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두 가지를 모두 시도해보고 자신의 취향을 찾는 것도 실치회를 즐기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초고추장을 살짝 얹어 싸 먹으면 새콤함이 더해지고, 처음에는 양념 없이 한 입 먹어보며 실치 본연의 섬세한 맛을 먼저 느껴보시길 권합니다.
실치회무침 — 양념과 함께 즐기는 방법
오이, 양파, 당근 등의 채소와 함께 고추장, 식초, 설탕, 다진 마늘로 만든 새콤달콤한 양념에 가볍게 버무린 실치회무침입니다. 이때 실치의 섬세한 식감이 손상되지 않도록 너무 세게 버무리지 않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쌉쌀한 실치의 맛이 양념과 어우러져 한층 친근하게 느껴지며, 흰 쌀밥에 얹어 비벼 비빔밥으로 먹으면 한 그릇이 금방 비워집니다. 처음 드시는 분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방법입니다.
실치무국과 실치전 — 또 다른 즐거움
실치는 회 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맑게 끓여낸 실치무국은 시원하고 개운한 맛으로 속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밀가루 반죽에 실치를 넣고 부쳐낸 실치전은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으로,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메뉴입니다.
실치회처럼 먹는 방법을 알아야 그 음식을 제대로 즐길 수 있습니다. 음식의 이름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어떤 재료인지, 어떤 맛인지, 어떻게 먹는지. 이 모든 정보가 함께 갖춰졌을 때 비로소 온전한 경험이 됩니다.
한국 음식에는 이처럼 '방법을 알아야 제대로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다양합니다. 보쌈을 먹을 때 새우젓을 곁들이는 것, 삼겹살을 상추에 싸서 먹는 것, 냉면에 식초와 겨자를 먹기 전에 넣는 것. 익숙한 사람에게는 당연한 일이지만, 처음 마주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정보들입니다.
이지메뉴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메뉴 이름을 단순히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에 담긴 맥락과 정보를 함께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식재료와 맛의 특징, 추천 먹는 방법, 알레르기 정보까지. 처음 마주하는 음식도 충분히 이해하고 즐길 수 있도록 돕습니다. 한국 음식이 낯선 외국인 관광객도, 실치회를 처음 접한 누구라도 당황하지 않고 이 음식의 진짜 매력을 경험할 수 있도록요.
매년 4월 중순에서 말까지 충남 당진 장고항에서는 '실치축제'가 열립니다.
축제 기간 동안에는 갓 잡은 신선한 실치를 맛볼 수 있는 것은 물론, 실치회무침 시식회, 지역 특산물 판매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됩니다.
가족, 친구와 함께 방문하여 맛있는 실치회도 맛보고, 서해의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봄날의 추억을 만들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축제 현장에서는 싱싱한 실치를 직접 구매하여 집에서 즐기거나 텐트를 가져가 수산시장 앞 캠핑장에서 캠핑을 즐길 수도 있으며, 여러 식당에서 실치회를 맛볼 수 있어 미식 여행의 만족도를 높여줍니다.
실치회 판매 식당은 실치와 함께 나오는 무침의 간 과 각 집마다 어떤 반찬이 함께 나오는지 확인 하고 내 취향에 맞는 집을 선택하시면 됩니다.
실치회는 놓치면 꼬박 1년을 기다려야 하는 음식입니다.
하지만 장고항에 왔다면 실치회 하나로 끝내기엔 조금 아쉽습니다. 이곳에서는 호래기회(꼴뚜기회)와 귀꼴뚜기도 함께 맛볼 수 있습니다. 호래기는 작고 통통한 꼴뚜기류로, 쫄깃하고 달콤한 식감이 사르르 녹는 실치회와 대비를 이루며 색다른 즐거움을 줍니다. 실치회의 섬세함을 먼저 느낀 뒤, 호래기회의 탱탱한 식감으로 마무리하는 것. 봄철 장고항에서만 누릴 수 있는 미식의 순서입니다.
짧은 기간 동안만 허락되는 이 특별한 음식은, 알고 먹을 때 비로소 그 가치가 완성됩니다. 만약 이번 봄, 실치회를 먹으러 간다면, 단순히 ‘먹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음식이 가진 맥락과 방법까지 함께 이해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같은 음식도, 이해하는 순간 완전히 다른 경험이 됩니다.